KB부동산 시세(2018년 12월 07일자)를 올려드립니다
1941년 12월 7일 화창한 일요일 아침,
일본군이 미국 영토인 하와이제도 오하우섬의 진주만을 기습적으로 공습했습니다.
하와이 오아후섬의 진주만(Pearl Harbor)에 있던 미국 해군기지는
여느때와 다름없이 평화로운 휴일 아침을 맞고 있었습니다.
오전 7시 30분에 일본 함대를 이륙한 일본군 비행기 360대는 아무런 제지없이 섬에 접근했고
7시 49분에 비행 총대장이 전군 돌격을 명령을 내리면서 태평양전쟁의 시작되었습니다.
하와이 북쪽 320km 해상까지 지출한 일본해군 기동부대에서 출격한 전폭기들은
불과 2시간 만에 미국 태평양 함대의 주요 전투함 그리고 전투기 등을 초토화시켰습니다.
당시 공습으로 인해 애리조나호·캘리포니아호·웨스트버지니아호가 침몰하고
오클라호마호는 전복되었습니다.
45분 뒤 제2진 비행단에 의해 메릴랜드호·네바다호·테네시호·펜실베이니아호에도
큰 타격을 입혔습니다.
그밖에도 함선 18척이 침몰하거나 크게 손상되었고 180여 대가 넘는 비행기가 파괴되었습니다.
미군 사상자는 사망자 2300명을 포함해서 3400명에 달한데 반해
일본군은 단지 비행기 29~60대와 소형 잠수함 5대를 잃었을 뿐이었습니다.
7시 53분에 함대는 진주만 기습에 성공하였다는
그 유명한 암호 '도라 도라 도라'를 사령부에 타전했습니다.
휴일 아침이어서 미군의 대비가 거의 없다보니 진주만은 일본 폭격기의 손쉬운 타겟이 되었고
미국 전함들은 일본의 폭격에 치명타를 입으면서
기습 효과를 노린 일본의 완벽한 승리로 보였습니다.
진주만 공습의 발단은 1937년 일본이 중국을 침략(중일전쟁)하고
1940년 추축국(독일·이탈리아)과 동맹을 맺자 미국이 자국 내의 일본 자산을 동결시키고
석유와 기타 전쟁필수품이 일본으로 나가는 것을 금지하다가
1941년 7월에는 일본과의 모든 상업·금융 관계를 단절한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당시 중국을 침공해서 아무 소득없이 오랫동안 계속된 전쟁에 질린 일본은
유럽의 상황을 이용해서 동아시아에 있는 유럽 식민지들을 수중에 넣고자 했습니다.
네덜란드령 동인도(지금의 인도네시아)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및
영국이 차지하고 있는 말레이반도에는 일본의 산업 경제에 필요한 원료인
주석과 고무, 그리고 석유가 대량으로 매장되어 있었습니다.
이 지역을 빼앗아 일본제국에 병합할 수 있다면 사실상 경제 자립을 이루고
태평양에서 독보적인 지배세력이 될 수 있다는 발상이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1941년 영국, 네덜란드과 미국이 태평양 지역에서
일본의 침략 행위를 더이상 용납하지 않겠다고 밝히자
연합 함대 사령장관인 야마모토 이소로쿠(山本五十六)를 중심으로 한 일본 전략가들은
더욱 대담한 전쟁 계획을 새롭게 세우게 됩니다.
일단 미국 함대가 전투력을 잃게 되면 일본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동남아시아와 인도네시아 열도 및 남태평양을 정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하에
일본은 태평양 확전의 주된 상대국으로 떠오른 미국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하와이 진주만과 필리핀에 있는 미국의 군사시설을 공격하기로 계획했습니다.
이에 1941년 11월 23일 항공모함 6척, 전함 2척, 순양함 3척,
구축함 11척으로 이루어진 일본 함대가
나구모 주이치(南雲忠一) 중장의 지휘 아래 하와이 북쪽 440㎞ 지점으로 항해해 나갔고,
마침내 12월 7일 진주만으로 모두 360대의 비행기를 출격시킨 것입니다.
진주만 공습을 통해 적을 빈사상태로 만든 후
유리한 조건으로 강화를 맺겠다는 게 일본의 전략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의 크나 큰 오판으로 판명되게 됩니다.
미국의 경제력이 진주만 공습으로 흔들릴 정도의 수준이 아니었고,
선전포고 없는 기습공격이 전세계로 하여금 엄청난 공분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진주만 공습 다음날인 12월 8일, 미국 의회는 곧바로 일본에 대한 전쟁을 선포하고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진주만 공습 4개월 뒤에 도쿄를 비롯한 주요 도시에 보복공습이 이루어졌고,
미국이 참전한 이후 4년이 채 되지 않은 1945년 8월 15일,
일본 천황 히로히토가 무조건 항복을 선언해야만 했습니다.
당시 야마모토가 야심을 가지고 미국 해군에게 일격을 가한 진주만 공습이
미국에 큰 피해를 주었음에도
오늘날 역사상 가장 실패한 작전으로 평가되는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당시 군사적으로 중요성이 점점 부각되고 있었던 항공모함은
단 한 척도 격침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진주만 공습 후 전함 없이도 미국은 항공모함만으로 반년간을 버티다가
얼마 후 역으로 일본에 큰 타격을 주었고
특히 항공모함에 실려 온 B25 폭격기는 전쟁을 마무리 지을 만큼 대단한 위력을 발휘했습니다.
둘째, 지난 러일전쟁 당시의 승리의 단꿈에 빠져
미국의 생산능력을 너무 과소평가했다는 점입니다.
자만감에 사로잡힌 야마모토는 적의 주력 함대를 격파하면 해상의 주도권을 잡을 수가 있고,
미군이 당장 협상에 나오지는 않더라도 기선제압을 통해 양국간에 벌어질 결전에서
일본이 기세등등하게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으로 그릇된 판단을 한 것입니다.
개전 당시에 단 6척이었던 미국의 항공모함은 생산에 더욱 박차를 가하면서
3년 뒤인 1945년 오키나와 작전 때는 77척이나 되는
엄청난 규모로 늘어나면서 결국 승기를 잡게 됩니다.
셋째, 가장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로 미군의 기반시설에 대한 피해가 거의 없었다는 것입니다.
오하우섬에 있던 석유저장 시설과 다른 지원시설들이 거의 온전했기에
곧바로 그 다음해의 미드웨이 해전에서 미국의 승리가 가능했습니다.
진주만 공습의 효과는 기대와는 달리 큰 효과를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진주만 공격으로 시작된 태평양전쟁은
일제의 식민지 통치하에 있던 우리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태평양전쟁에서 수세에 내몰린 일제가 1944년부터
'조선인 학도 육군지원병제도'와 '징병제도'를 시행하면서
전장으로 수많은 조선인들을 강제동원에 나선 것입니다.
일본이 강제 동원한 징병과 징용피해 조선인은 100만 명이 훌쩍 넘었습니다.
이들은 낯선 이국의 전선에서 혹사당하거나 이름없이 숨져 갔고,
일본군 위안소에 강제 동원되어 꽃다운 청춘을 희생당한 위안부 할머니들의 상처는
여전히 우리에게 아물지 않은 쓰라린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과거는 한낱 과거사일 뿐,
아이러니컬하게도 진주만을 공습당한 미국과 불시에 침공했던 일본은
오늘날 서로간의 국익을 위해 오히려 맹방으로 우애를 과시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사과받아야 할 과거사가 분명 존재하지만
사과할 의사가 전혀 없는 그들에게 사과를 재촉하기 보다는,
지금까지의 이루어온 비약적인 발전을 이어가면서 국가적 위상을 더욱 높이다보면
어느 순간 스스로 과거를 뉘우치고 참회하는 그날이
반드시 도래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본격적인 겨울로 접어든 12월의 첫번째 kb부동산 시세를 살펴보겠습니다.
매매가격 : 0.00% 보합
-전국 아파트 매매가격 상승 기록
-수도권 전주 대비 0.01% 상승
전국 아파트 매매가격은 전주 대비 0.00%로 전주대비 보합을 나타냄.
서울(0.02%)은 전주대비 상승폭이 낮아짐.
5개 광역시(0.06%)와 수도권(0.01%)은 전주대비 상승을 나타낸 반면,
기타지방(-0.08%)은 전주대비 하락을 나타냄.
전세가격 : 0.04% 하락
-전국 아파트 전세가격 전주 대비 보합 기록
-서울 전주 대비 0.03% 하락
-기타지방 전주 대비 하락 기록
금주 전국 아파트 전세가격(-0.04%)은 전주대비 하락을 나타내고 있음.
서울(-0.03%)은 강남(-0.04%)과 강북(-0.01%) 모두 전주 대비 하락을 나타냄.
수도권(-0.04%)과 5개 광역시(-0.01%), 기타지방(-0.05%)은 전주대비 하락을 나타냄.
[지역별 아파트 매매가격 동향]
(1) 서울특별시
강북 (14개구)
-종로구(0.09%)는 대출 규제 여파로 매수 문의는 한산하지만
아파트 공급이 많지 않은 지역 특성상 물량도 여유로운 편은 아님.
종로 업무지구의 꾸준한 직주 근접 수요로 역세권의 주상복합 등
소형 물건 부족 여전해 매물 소진에 따른 상승세 이어감.
-은평구(0.05%)는 거래 문의 급감하여 거래는 매우 한산하지만,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지역으로 개발 호재와 GTX역 주변,
상대적으로 가격 상승폭이 낮았던 단지를 중심으로 간헐적으로 거래 일어남.
강남 (11개구)
-동작구(0.10%)는 신안산선 조기 착공과 노량진 뉴타운, 서리풀 터널 등 개발 호재와
실수요자 중심으로 거래 일어나 저가 매물 소화되면서 소폭 상승함.
-강남구(-0.07%)는 9.13대책과 이어진 대출규제로 거래 심리 위축되면서
매도 매수 문의 급감함.
투자수요뿐만 아니라 실수요자들도 움직이지 않고 있음.
(2) 인천광역시
-부평구(0.06%)는 7호선 연장사업 호재로 수혜 지역과 재건축, 재개발 지역의 투자자들의
매수문의 꾸준함.
(3) 경기도
-구리(0.16%)는 별내선 연장 예정 및 구리월드디자인시티 조성사업 재추진 기대감 등
영향으로 소폭 상승함.
-평택(-0.30%)은 죽백동, 용이동 신규 입주 물량 많아 실수요자들은 기존 집을 매도하고자
급매로 내놓고 있으며 매수자들은 대출 규제 영향으로 관망세 보이고 있어 거래 부진함.
-광명(-0.13%)은 투기과열지구 지정 및 대출 규제로 거래가 한산하고,
철산동, 하안동 일대 재건축 단지들 가격 하락세 이어감.
(4)광주광역시
-광산구(0.47%)는 아파트 신규 공급이 부족한 지역으로 교육 등 인프라 형성이 잘된
수완지구 역시 매물 부족함에 따라 가격 상승하는 분위기 지속되고 있음.
-서구(0.45%)는 신규 공급 물량이 적은 지역으로 생활 인프라가 우수하고 업무지구가 밀집된
상무지구의 매물 품귀현상 지속되며 치평동, 금호동의 새 아파트 위주로 매수세 문의 이어감.
(5)대전광역시
-유성구(0.21%)는 엑스포 재창조 사업, 가족형 온천테마파크 조성 등
개발 호재 영향으로 타지역에서 투자자 유입 지속되고 있음.
(6) 울산광역시
-동구(-0.33%)는 조선업과 관련된 산업 비중이 높은 울산 지역에 산업체들의 수주가 줄면서
불황이 지속되고 있고, 울산 내 대단지 신규 분양 및 입주 등 신규 공급도 이어지면서
물량은 쌓이고 가격 하락세 장기화되고 있음.
'a Millionaire'
'a Billionaire'
우리가 흔히 막대한 재산을 소유한 갑부를 이야기할 때
'백만장자(a Millionaire)'나 천만장자(a Billionaire)를 언급하곤 합니다.
물론 달러의 환율에 따라 그때 그때 우리에게는 가치가 다소 달라질 수는 있겠지만
백만장자는 말그대로 100만 달러를 보유한 부자이고,
천만장자는 1000만 달러를 보유한 부자를 의미합니다.
백만장자라는 말은 이미 1719년 미국의 금융가 스티브 펜티먼이 처음 사용하였고
1816년 조지 고든 바이런의 편지에서 영어로 처음 기록되었으며,
그 뒤 벤저민 디즈레일리의 1826년 소설에도 이 용어가 등장했다고 하는데
산업혁명 이후 산업을 주도했던 당시의 모피업자나 담배제조업자들을 일컫는 말이기도 합니다.
과거 1800년대에 이미 나타났던 백만장자는 어마어마한 갑부였겠지만
100만 달러를 금일자 환율로 계산해보면 약 11억 2250만원 정도가 되고,
1000만 달러는 그 10배인 112억 2500만원 정도가 됩니다.
수치상으로만 보자면 우리 주변에서 백만장자를 흔히 마주할 수 있다는 결론인데
백만달러의 가치를 따지기 보다 그만큼 부자의 대명사로 상징적인 단어가 된 것이겠지요.
상징적인 백만장자보다 직장인들에게는 현실적으로 억대 연봉자가 늘 선망의 대상입니다.
억대 연봉을 몇년 간만 모으면 쉽게 백만장자가 될 수 있는 것이고,
반대로 그만큼 억대 연봉을 실현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2017년 기준으로 연봉이 6746만원 이상이면 연봉 상위 10%인 것으로 조사되었고
국내 근로자의 평균 연봉은 3475만원으로 집계되었습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고용노동부의 2017년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를 바탕으로
근로자 1519만명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총 근로자 가운데
상위 10%의 연봉은 6746만원 이상, 상위 20%는 4901만원 이상, 상위 30%는 3900만원 이상,
상위 40%는 3236만원 이상, 상위 50%는 2720만원 이상이었습니다.
통계상으로 연봉이 6746만원 이상이면 직장인 중 상위 10%가 된다고 하는데,
실제로 연봉이 6746만원 이상이라 하더라도
정작 본인이 상위 10%의 삶을 살고 있다고 느끼는 이는 그리 많지 않아 보입니다.
연봉 상위 10%에 해당하는 10분위의 평균 연봉은 9620만원으로 나타났는데
억대에 육박하는 연봉을 받는 직장인이라면 그나마 상위 10%에 속한다고 느끼지 않을까요?
물론 누구나 억대 연봉자가 될 수는 없고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 지는 우리 사회에서
억대 연봉자로 정년을 다 채우고 자리를 지키는 일 또한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입니다.
결국 억대연봉이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이도 불행하고,
억대연봉을 실현했다 하더라도 행복은 잠시뿐,
또다시 미래를 걱정하는 처지가 될 수 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아무리 노력한들 억대 연봉자가 될 수 없는 현실을 운명으로 받아 들이고
그저 무기력하게 현실앞에서 주저앉아야 하는 걸까요?
고액의 연봉을 실현했다 한들,
OECD 국가 중 노인빈곤율 1위인 우리의 현실에서
정작 본인 스스로 정할 수 없는 정년으로 인해
보장받을 수 없는 노후는 도대체 어떻게 개척해야 할까요?
돈이 많고 적고를 떠나 우리 모두가 안고 있는 당면과제에 대해
여러분과 함께 하나씩 그 해법을 진지하게 찾아나가 보려 합니다.
to be cotinued....
-by몬토-
https://cafe.naver.com/monte0806/5468